본문 바로가기

보관함/기록

즐거운 편지 / 황동규 즐거운 편지- 황동규 1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 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2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 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더보기
사람이 온다 / 이병률 사람이 온다_이병률 바람이 커튼을 밀어서 커튼이 집 안쪽을 차지할 때나많은 비를 맞은 버드나무가 늘어져길 한가운데로 쏠리듯 들어와 있을 때사람이 있다고 느끼면서 잠시 놀라는 건거기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낮선 곳에서 잠을 자다가갑자기 들리는 흐르는 물소리등짝을 훑고 지나가는 지진의 진동 밤길에서 마주치는 눈이 멀 것 같은 빛은 또 어떤가마치 그 빛이 사람한테서 뿜어나오는 광채 같다면때마침 사람이 왔기 때문이다 잠시 자리를 비운 탁자 위에 이파리 하나가 떨어져 있거나멀쩡한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져서 하늘을 올려다볼 때도 누가 왔나 하고 느끼는 건 누군가가 왔기 때문이다 팔목에 실을 묶는 사람들은팔목에 중요한 운명의 길목이지나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겠다 인생이라는 잎들을 매단 큰 나무 한 그루를오래 바라보는 .. 더보기
흔들리며 피는 꽃 / 도종환 흔들리며 피는 꽃도종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며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더보기
귀천 / 천상병 귀천(歸天)천상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노을빛 함께 단둘이서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가서,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더보기
살아남은 자의 슬픔 살아남은 자의 슬픔 _ 베르톨트 브레히트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그러나 지난 밤 꿈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Ich, der Uberlebende- Bertolt Brecht Ich weiß natürlich: einzig durch GlückHabe ich so viele Freunde überlebt. Aber heute nacht im TraumHörte ich diese Freunde von mir sagen: “Die Stärkeren überleben”Und ich haßte mich. 더보기
그 꽃 그 꽃 고은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더보기
어느 95세 어른의 수기 어느 95세 어른의 수기 나는 젊었을 때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 결과 나는 실력을 인정받았고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 덕에 65세 때 당당한 은퇴를 할 수 있었죠 그런 내가 30년 후인 95 살 생일 때 얼마나 후회의 눈물을 흘렸는지 모릅니다. 내 65년의 생애는 자랑스럽고 떳떳했지만 이후 30년의 삶은 부끄럽고 후회되고 비통한 삶이었습니다. 나는 퇴직 후 이제 다 살았다. "남은 인생은 그냥 덤이다".라는 생각으로 그저 고통 없이 죽기만을 기다렸습니다. 덧없고 희망이 없는 삶.... 그런 삶을 무려 30년이나 살았습니다. 30년의 시간은 지금 내 나이 95세 로 보면..... 3분의/1에 해당하는 기나긴 시간입니다. 만일 내가 퇴직할 때 앞으로 30년을 더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난 정말 그렇게 .. 더보기
스며드는 것 / 안도현 스며드는 것 안도현 꽃게가 간장 속에 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 등판에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 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 꿈틀거리다가 더 낮게 더 바닥 쪽으로 웅크렸으리라 바둥거렸으리라 버둥거리다가 어찌할 수 없어서 살 속에 스며드는 것을 한때의 어스름을 꽃게는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 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 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 더보기
항소이유서 - 유시민 요 지본 피고인은 1985년 4월 1일 서울지방법원 남부지원에서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고 이에 불복, 다음과 같이 항소이유서를 제출합니다. 다 음본 피고인은 우선 이 항소의 목적이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거나 1심 선고 형량의 과중함을 애소(哀訴)하는데 있지 않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두고자 합니다. 이 항소는 다만 도덕적으로 보다 향상된 사회를 갈망하는 진보적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다하려는 노력의 소산입니다. 또한 본 피고인은 1심 판결에 어떠한 논란거리가 내포되어 있는지 알지 못하며 알고 싶은 생각도 없습니다. 자신의 행위의 정당성을 판단하는 기준으로서 본 피고인이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하느님이 주신 양심이라는 척도이지 인간이 만든 법률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법률에 .. 더보기
지하인간 / 장정일 지하인간 장정일 내 이름은 스물 두 살 한 이십 년쯤 부질없이 보냈네. 무덤이 둥근 것은 성실한 자들의 자랑스런 면류관 때문인데 이대로 땅 밑에 발목 꽂히면 나는 그곳에서 얼마나 부끄러우랴? 후회의 뼈들이 바위틈 열고 나와 가로등 아래 불안스런 그림자를 서성이고 알만한 새들이 자꾸 날아와 소문과 멸시로 얼룩진 잡풀 속 내 비석을 뜯어먹으리 쓸쓸하여도 오늘은 죽지 말자 앞으로 살아야 할 많은 날들은 지금껏 살았던 날에 대한 말없는 찬사이므로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