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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관함/기록

저무는 바다를 머리맡에 걸어두고 / 이외수 저무는 바다를 머리맡에 걸어두고 이외수 살아간다는 것은 저물어 간다는 것이다 슬프게도 사랑은 자주 흔들린다 어떤 연인은 노래가 되고 어떤 연인은 상처가 된다 하루에 한 번씩 바다는 흔들리고 노래도 상처도 무채색으로 지워진다 나는 시린 무릎을 감싸 안으며 나지막히 그대 이름을 부른다 살아간다는 것은 오늘도 내가 혼자임을 아는 것이다 더보기
알 수 없어요 / 한용운 알 수 없어요 한용운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의 파문을 내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 입니까 지리한 장마끝에 서풍에 몰려가는 무서운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 입니까 꽃도 없는 깊은 나무에 푸른 이끼를 거쳐서 옛 탑위의 고요한 하늘을 스치는 알수 없는 향기는 누구의 입김 입니까 근원은 알지도 못할 곳에서 나서 돌부리를 올리고 가늘게 흐르는 작은 시내는 굽이굽이 누구의 노래 입니까 연꽃같은 발꿈치로 가이없는 바다를 밟고 옥 같은 손으로 끝없는 하늘을 만지면서 떨어지는 날을 곱게 단장하는 저녁놀은 누구의 시 입니까.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그칠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 입니까... 더보기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 / 김광규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 김광규 4·19가 나던 해 세밑 우리는 오후 다섯 시에 만나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불도 없이 차가운 방에 앉아 하얀 입김 뿜으며 열띤 토론을 벌였다 어리석게도 우리는 무엇인가를 정치와는 전혀 관계 없는 무엇인가를 위해서 살리라 믿었던 것이다 결론 없는 모임을 끝낸 밤 혜화동 로터리에서 대포를 마시며 사랑과 아르바이트와 병역 문제 때문에 우리는 때묻지 않은 고민을 했고 아무도 귀기울이지 않는 노래를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노래를 저마다 목청껏 불렀다 돈을 받지 않고 부르는 노래는 겨울밤 하늘로 올라가 별똥별이 되어 떨어졌다 그로부터 18년 오랜만에 우리는 모두 무엇인가 되어 혁명이 두려운 기성 세대가 되어 넥타이를 매고 다시 모였다 회비를 만 원씩 걷고 처자식들의 안부를 나누고 월.. 더보기
북어 / 최승호 북어 최승호 밤의 식료품 가게 케케묵은 먼지 속에 죽어서 하루 더 손때 묻고 터무니없이 하루 더 기다리는 북어들, 북어들의 일 개 분대가 나란히 꼬챙이에 꿰어져 있었다. 나는 죽음이 꿰뚫은 대가리를 말한 셈이다. 한 쾌의 혀가 자갈처럼 죄다 딱딱했다. 나는 말의 변비증을 앓는 사람들과 무덤 속의 벙어리를 말한 셈이다. 말라붙고 짜부라진 눈, 북어들의 빳빳한 지느러미. 막대기 같은 생각 빛나지 않는 막대기 같은 사람들이 가슴에 싱싱한 지느러미를 달고 헤엄쳐 갈 데 없는 사람들이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느닷없이 북어들이 커다랗게 입을 벌리고 거봐,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 귀가 먹먹하도록 부르짖고 있었다 더보기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 / 정희성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 정희성 어느날 당신과 내가 날과 씨로 만나서 하나의 꿈을 엮을 수만 있다면 우리들의 꿈이 만나 한 폭의 비단이 된다면 나는 기다리리, 추운 길목에서 오랜 침묵과 외로움 끝에 한 슬픔이 다른 슬픔에게 손을 주고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의 그윽한 눈을 들여다볼 때 어느 겨울인들 우리들의 사랑을 춥게 하리 외롭고 긴 기다림 끝에 어느날 당신과 내가 만나 하나의 꿈을 엮을 수만 있다면 더보기
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적 없다 / 청아 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적 없다 청아 내 그대를 사랑함에 있어서 한점 부끄럼 없다 단지 후회를 하나 하자면 그날, 그대를 내손에서 놓아버린것 뿐. 어느새 화창하던 그 날이 지나고 하늘에선 차디찬 눈이 내려오더라도 그 눈마저... 소복 소복 따뜻해 보이는 것은 그대를 향한 내사랑일까. 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적 없다. 더보기
가난한 사랑 노래 / 신경림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 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 소리도 그려 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 신경림, 가난한 사랑 노래 ; 이웃의 한 젊은이를 위하여 더보기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 서정주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서정주 섭섭하게 그러나 아주 섭섭지는 말고 좀 섭섭한 듯만 하게 이별이게 그러나 아주 영 이별은 말고 어디 내생에서라도 다시 만나기로 하는 이별이게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이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엇그제 만나고 가는 바람이 아니라 한두 철 전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더보기
먼 훗날 / 김소월 먼 훗날 김소월 먼 훗날 당신이 찾으시면 그때에 내말이 '잊었노라' 당신이 속으로 나무라면 '무척 그리다가 잊었노라' 그래도 당신이 나무라면 '믿기지 않아서 잊었노라' 오늘도 내일도 아니 잊고 먼훗날 그때에 '잊었노라' 더보기
너의 하늘을 보아 박노해 너의 하늘을 보아 박노해 네가 자꾸 쓰러지는 것은.. 네가 꼭 이룰 것이 있기 때문이고, 네가 지금 길을 잃어버리고 방황하는 것은.. 네가 반드시 가야만 할 길이 있기 때문이야. 그렇게 힘든 길이지만, 네가 울면서도 그 길을 재촉하는 것은.. 네 인생에 반드시 꽃피워 낼 것이 있기 때문이야. 너무 힘들어 주체할 수 없을만큼, 눈물이 흐르고 가슴이 답답할때는 가만히 눈을 감고 네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 가 닿는.. 너의 하늘을 보아...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