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보관함

북어 / 최승호 북어 최승호 밤의 식료품 가게 케케묵은 먼지 속에 죽어서 하루 더 손때 묻고 터무니없이 하루 더 기다리는 북어들, 북어들의 일 개 분대가 나란히 꼬챙이에 꿰어져 있었다. 나는 죽음이 꿰뚫은 대가리를 말한 셈이다. 한 쾌의 혀가 자갈처럼 죄다 딱딱했다. 나는 말의 변비증을 앓는 사람들과 무덤 속의 벙어리를 말한 셈이다. 말라붙고 짜부라진 눈, 북어들의 빳빳한 지느러미. 막대기 같은 생각 빛나지 않는 막대기 같은 사람들이 가슴에 싱싱한 지느러미를 달고 헤엄쳐 갈 데 없는 사람들이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느닷없이 북어들이 커다랗게 입을 벌리고 거봐,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 귀가 먹먹하도록 부르짖고 있었다 더보기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 / 정희성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 정희성 어느날 당신과 내가 날과 씨로 만나서 하나의 꿈을 엮을 수만 있다면 우리들의 꿈이 만나 한 폭의 비단이 된다면 나는 기다리리, 추운 길목에서 오랜 침묵과 외로움 끝에 한 슬픔이 다른 슬픔에게 손을 주고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의 그윽한 눈을 들여다볼 때 어느 겨울인들 우리들의 사랑을 춥게 하리 외롭고 긴 기다림 끝에 어느날 당신과 내가 만나 하나의 꿈을 엮을 수만 있다면 더보기
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적 없다 / 청아 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적 없다 청아 내 그대를 사랑함에 있어서 한점 부끄럼 없다 단지 후회를 하나 하자면 그날, 그대를 내손에서 놓아버린것 뿐. 어느새 화창하던 그 날이 지나고 하늘에선 차디찬 눈이 내려오더라도 그 눈마저... 소복 소복 따뜻해 보이는 것은 그대를 향한 내사랑일까. 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적 없다. 더보기
가난한 사랑 노래 / 신경림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 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 소리도 그려 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 신경림, 가난한 사랑 노래 ; 이웃의 한 젊은이를 위하여 더보기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 서정주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서정주 섭섭하게 그러나 아주 섭섭지는 말고 좀 섭섭한 듯만 하게 이별이게 그러나 아주 영 이별은 말고 어디 내생에서라도 다시 만나기로 하는 이별이게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이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엇그제 만나고 가는 바람이 아니라 한두 철 전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더보기
먼 훗날 / 김소월 먼 훗날 김소월 먼 훗날 당신이 찾으시면 그때에 내말이 '잊었노라' 당신이 속으로 나무라면 '무척 그리다가 잊었노라' 그래도 당신이 나무라면 '믿기지 않아서 잊었노라' 오늘도 내일도 아니 잊고 먼훗날 그때에 '잊었노라' 더보기
너의 하늘을 보아 박노해 너의 하늘을 보아 박노해 네가 자꾸 쓰러지는 것은.. 네가 꼭 이룰 것이 있기 때문이고, 네가 지금 길을 잃어버리고 방황하는 것은.. 네가 반드시 가야만 할 길이 있기 때문이야. 그렇게 힘든 길이지만, 네가 울면서도 그 길을 재촉하는 것은.. 네 인생에 반드시 꽃피워 낼 것이 있기 때문이야. 너무 힘들어 주체할 수 없을만큼, 눈물이 흐르고 가슴이 답답할때는 가만히 눈을 감고 네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 가 닿는.. 너의 하늘을 보아... 더보기
인생을 다시 산다면 인생을 다시 산다면나딘 스테어 인생을 다시 산다면 다음번에는 더많은 실수를 저지르리라 긴장을 풀고 몸을 부드럽게 하리라 이번 인생보다 더욱 운둔해지리라. 가능한 한 매사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며 보다 많은 기회를 붙잡으리라. 여행을 더 많이 다니고 석양을 더 구경하리라. 산에도 더욱 자주 가고 강물에서 수영도 많이 하리라 아이스크림은 많이 먹되 콩요리는 덜 먹으리라 실제적인 고통은 많이 겪을 것이나 공상적인 고통은 가능한 한 피하리라. 보라, 나는 시간시간을 하루를 의미있고 분별있게 살아가는 사람의 일원이 되리라 아, 나는 많은 순간들을 맞았으나 인생을 다시 시작한다면 그러한 순간들을 더 많이 가지리라. 사실은 그러한 순간들 외에는 다른 의미 없는 시간들을 갖지 않도록 애쓰리라 오랜 시간을 두고 .. 더보기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칼릴 지브란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칼릴 지브란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그래서 하늘 바람이 너희 사이에서 춤추게 하라. 서로 사랑하라. 그러나 사랑으로 구속하지는 말라. 그보다 너희 혼과 혼의 두 언덕 사이에 출렁이는 바다를 놓아 두라. 서로의 잔을 채워 주되 한 쪽의 잔만을 마시지 말라. 서로의 빵을 주되 한 쪽의 빵만을 먹지 말라.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즐거워하되 서로는 혼자 있게 하라. 마치 현악기의 줄들이 하나의 음악을 울릴지라도 줄은 서로 혼자이듯이. 서로 가슴을 주라. 그러나 서로의 가슴속에 묶어 두지는 말라. 오직 큰 생명의 손길만이 너희의 가슴을 간직할 수 있다. 함께 서 있으라. 그러나 너무 가까이 서 있지는 말라. 사원의 기둥들도 서로 떨어져 있고 참나무와 삼나무는 서로의 그늘속에선 자랄 수 없다.. 더보기
잠이나 자게 백창우 잠이나 자게 백창우 잠이나 자게 그렇게 마음이 쓸쓸하고 막 울고 싶을 땐 일찍 집에 들어가 잠이나 자게 세상에 고운 사람 하나 없고 모든 게 다 귀찮아 질 땐 그저 죽은 듯 하루종일 잠이나 자게 전화도 내려놓고 탁상시계도 내다놓고 문도 꼭 걸어 잠그고 불도 다 끄고 실컷 . . . . . . . . . . . . 잠이나 자게 세상에 그리운 이 하나 없고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을 땐 그저 죽은 듯 하루종일 잠이나 자게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