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처음 가는 길 도종환 처음 가는 길 도 종 환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은 없다 다만 내가 처음 가는 길일 뿐이다 누구도 앞서 가지 않은 길은 없다 오랫동안 가지 않은 길이 있을 뿐이다 두려워 말아라 두려워하였지만 많은 이들이 결국 이 길을 갔다 죽음에 이르는 길조차도 자기 전 생애를 끌고 넘은 이들이 있다 순탄하기만 한 길은 길 아니다 낯설고 절박한 세계에 닿아서 길인 것이다 더보기
퇴근길, 다시 길을 잃다 김기만 퇴근길, 다시 길을 잃다 김기만 쓰레기 매립장을 지날 때 언젠가 버린 꿈들도 보았지 쓰레기 냄새 젖은 코스모스가 정겨운 퇴근길 속도 잃은 첫사랑 카메라에 찍히고 가위 눌린 꿈 하나 제한된 시간을 담배처럼 태우고 나니 가을은 미치고 퇴근길은 언제나 어지러워 어쩌다 이렇게 멀리 왔을까 싶어 백미러를 봤을 때 어느덧 서른 위에 서 있었지 나를 지키던 어린 날의 꿈들이 전혀 새로울 것 없이 익숙해진 모습으로 삶의 주위를 서성거릴 뿐 길 잃는 나이에 도착하고 차표 한 번 다시 본다 어디로 가는지 어디에 길이 있는지 그리울 것 하나 없이 다람쥐가 돌고 돈다 또 한 바퀴를 더보기
눈 천양희 눈 천양희 바람소리 더 잘 들으려고 눈을 감는다 어둠 속을 더 잘 보려고 눈을 감는다 눈은 얼마나 많이 보아버렸는가 사는 것에 대해 말하려다 눈을 감는다 사람인 것에 대하여 말하려다 눈을 감는다 눈은 얼마나 많이 잘못 보아버렸는가 더보기
차 잎을 따며 김현성 차 잎을 따며 김현성 비가 오기 전에 그대가 왔으면 좋겠다 산 너머 하늘 어두운데 염주알 빗방울 스님 말씀 비가 온다는데 차잎을 따며 내 마음을 우려내, 그대 어서와 그리움 나누고 싶다 더보기
침묵하는 연습 유안진 침묵하는 연습 유안진 나는 좀 어리석어 보이더라도 침묵하는 연습을 하고 싶다. 그 이유는 많은 말을 하고 난 뒤일수록 더욱 공허를 느끼기 때문이다. 많은 말이 얼마나 사람을 탈진하게 하고 얼마나 외롭게 하고 텅비게 하는가? 나는 침묵하는 연습으로 본래의 나로 돌아가고 싶다. 내 안에 설익은 생각을 담아두고 설익은 느낌도 붙잡아 두면서 때를 기다려 무르익히는 연습을 하고 싶다. 다 익은 생각이나 느낌 일지라도 더욱 지긋이 채워 두면서 향기로운 포도주로 발효되기를 기다릴 수 있기를 바란다. 침묵하는 연습, 비록 내 안에 슬픔이건 기쁨이건.. 더러는 억울하게 오해받는 때에라도 해명도 변명조차도 하지 않고 무시해 버리며 묵묵하고 싶어진다. 그럴 용기도.. 배짱도.. 지니고 살고 싶다.. 더보기